지난 번 칼럼에서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해 필요한 세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이번 내용은 그 중 하나인 "선택과 집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교육학자 버니스 매카시 박사의 4MAT System이라는 학습법이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이나 비즈니스 모델링, 마케팅 방면에서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으며, 어떤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동기, 행동 및 감정을 조절하는 대뇌 번연계를 자극해야 한다는 이론이죠. 요약하면, 누군가의 행동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What이 아니라 Why를 먼저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단체에 매달 1만 원씩을 기부하고 있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기부 금액을 2만 원으로 올려주기를 부탁하는 요청을 한다고 가정을 해 보죠. 무엇을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까요? 보통은 우리 단체가 얼마나 많은 좋은 일들을 하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신문기사에 등장했는지, 정부기관에서 얼마나 많은 상을 탔는지, 그리고 재정적으로 조금은 쪼들리고 있다는 말을 어떻게 부드럽고 품위 있게 해야 할 지를 고민합니다. 기부자들과 피기부자들이 어깨동무하고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을 몇 장 찾고,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감사의 뜻을 표한 서신을 뒤적이며, 뉴스레터와 SMS문자, 그리고 친필서신과 더불어 거액 기부자에 대한 시상식을 어떤 현수막과 동영상으로 장식해야 할 지 결정하기 위해 서둘러 실무자 미팅을 잡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단계가 빠져 있습니다. 이미 매달 1만 원씩을 기부하고 있는 사람들은 왜 기부를 하고 있을까요?

 

먼저 여러분에게 어떤 정보가 있는지를 확인해 봅시다. 이름, 나이, 성별, 핸드폰번호, 이메일 주소가 있을 겁니다. 조금 더 세밀하게 정보를 관리해 온 단체라면, 그 다음으로 직장, 연간소득, 결혼여부, 자녀 수가 있을 수 있겠죠. 여기에 더해 단체 내부의 데이터베이스가 통합 관리되고 있다면, 참가했던 행사의 목록과 설문조사의 답변 내용, 봉사기록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보죠. "그(녀)는 왜 정기기부를 하고 있습니까?"

 

답은 "모릅니다."입니다. 거주지, 직업, 연간소득 등으로 재정상태를 파악해서 추가 기부 가능성을 점칠 수 있을까요? 40대보다 30대가 세상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 얼마나 더 관심이 있을까요? 지난 달에 기부를 했다 해서 이번 달에도 기부를 하리라 기대할 수 있을까요? 3년 전의 설문에 기부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해서 내일 전화했을 때 기꺼이 기부 의사를 밝히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우리 단체가 확보하고 있는 그(녀)의 연락처가 아직 그대로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메이저 기프트 중심의 거액기부자나, 사소한 불만사항에도 매번 항의를 해 오는 소위 '진상' 회원이 아니라면 기부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보내지는 연락은 이메일 뉴스레터 정도뿐일 테니까요. 그나마도 받아보는 사람이 어떤 능동적인 피드백을 할 꼭지가 마땅치 않은, 일방적인 정보전달 및 홍보의 내용일 가능성이 높지요. 뉴스레터 평균 오픈률 8%, 평균 유입율(클릭율) 12%, 이메일 주소 불명 50%의 결과는 보통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이미 상업 마케팅 영역에서는 인구통계학적 정보와 활동(구매) 이력만으로는 고객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이 강구되고 있지만 투입 대비 실적으로 연결되는 비율은 높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영리 사단법인에게는 '회원'이라는 아주 강력한 무기가 있죠. 제대로만 관리된다면 이는 '구매고객'보다 훨씬 더 강력한 지원군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단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모든 회원에게 명확하게 인식되어 있어야 하고, 사무국은 그(녀)가 '왜(why)' 우리 단체의 회원으로 남아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예상 답변을 너무 거창한 곳에서 찾고 있지는 않는지 자문해 보세요.

 

"우리 단체가 운영하는 모금함이 출퇴근길에 있나요?"

"우리 단체의 홍보대사 중 누구를 제일 좋아하세요?"

"자동 이체는 어느 은행을 선호하시나요? 핸드폰이나 신용카드는 어떠세요?"

"후원 아동의 사진보다 후원자 본인의 사진이 더 마음에 드시나요?"

 

기부자(회원) 정보 데이터베이스는 기존의 인구통계학적 정보와 활동이력에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그(녀)가 참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문하고, 우리 단체에서 운영하는 모든 커뮤니케이션 채널(뉴스레터, 설문, 홈페이지, 전화, 대면접촉)은 이에 대한 답을 알아내는 데 최적화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성과를 역시 데이터베이스화 하여 접촉 당 성공률을 더 높여야 합니다. 기존의 방법론에서는 통계적으로 확률이 높은 대상을 공략하도록 프로세스가 짜여 있습니다. 한 번 기부한 사람이 한 번 더 기부할 가능성이 높다거나, 전체 기부금액을 달성하기 위해서 상위 60%의 금액을 메이저 기프트를 통해 먼저 달성해야 한다거나 하는 방법들이지요. 하지만 개인기부자 수가 적고 시장이 좁은 우리나라에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캠페인의 결과를 놓고 수치상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기부자(회원)들의 동기를 최대한 파악해서 그에 적합한 콘셉트와 형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면, 단발성 성공보다 더욱 중요한 회원과 단체간의 신뢰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상호간의 신뢰는 감가상각이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한번 반응했을 때 그에 대한 적절한 피드백이 없다면 다시 반응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활용하지 않을 정보는 수집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받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해도, 준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주었는지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짜증과 더불어 단체의 능력치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기부자를 움직일 수 있는 정보를 선택하여 수집하세요. 그리고 그 정보에 집중하세요. 특히 단체와 회원 간의 소통에 있어 일을 위한 일은 회원의 충성도(Loyalty)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낮추는 데 기여합니다.

 

한때 우리나라를 농구 열풍에 휩싸이게 했던 인기만화 '슬램덩크'에서 제가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훗날 에이스로 활약하며 학교를 전국대회까지 이끈 서태웅은 왜 북산고등학교로 왔느냐는 질문에 천연덕스럽게 "가까와서"라고 대답합니다. 역설적으로 보면, 지역 예선조차도 통과하기 힘든 약체 팀이었던 북산고등학교가 그를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넉넉한 자본과 두터운 선수층, 감독의 리더십이 아니라 등하교하기 편할 정도로 가깝다는 이유로 학교를 선택할 용의가 있는 훌륭한 선수가 학교 근처에 살고 있다는 사실의 '인지'였던 셈이죠. 뭔가 대단한 대의명분과 캐치프레이즈에 비해서 기부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열쇠는 아주 작은 곳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글 맺음을 대신하여, Why를 규명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사이먼 사이넥의 "위대한 리더들이 행동을 이끌어내는 방법" 동영상을 소개 드립니다.

 



※ 본 포스팅은 서울특별시 장애인시설복지협회의 의뢰를 받아 협회 블로그(http://sjh8171.tistory.com/)에 게재했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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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 경제학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오래된 경구(經口)로서, 영국의 신고전학파 경제학자인 알프레드 마셜이 한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금 활동에 대한 연구에 있어 최근의 경향은 단순한 복지 증진 차원을 벗어나 경영, 경제, 법률, 이벤트 그리고 예술과 질병 등 전반적인 영역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지요. 그만큼 현장에서 활동하는 모금가들과, 전략을 수립하고 대외 교섭을 담당하는 경영자들 모두에게 더욱 많은 역량과 경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공공의 선을 실현하는 대의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모금가들은 당연히 따뜻한 가슴의 소유자들일 것입니다. 다만, 그러한 열정이 보다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종종 장애요소로서 작용할 위험이 있죠.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이터는 대부분 미완성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일단 한번 정리된 데이터는 계속 인용되고, 판단의 근거로 활용됩니다. 의사결정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비영리 단체의 특성상, 이렇게 잘못 인용된 데이터로 인해 조직 내 선입견과 편견이 고착되고 결국 극복하기 어려운 고정관념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객관적인 자료보다는 경험과 짐작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비효율을 방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데이터베이스의 구축과 관리입니다. 이를 위해 중요한 사항 몇 가지를 말씀드릴께요.

 

1. 선택과 집중 : 반드시 필요한 정보만 관리

 

보통 비영리단체의 홈페이지에 가입할 때 이름, 주소, 핸드폰번호, 직장, 결혼기념일 등 수많은 정보항목을 입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받은 정보들이 현장에서 활용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가입 후 시간이 지나도 관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과거의 정보가 그대로 남아있기도 하고, 형식에도 맞지 않는 틀린 정보가 입력되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메일 뉴스레터 도달률을 보면 올바르지 않은 주소로 인해 절반 이상의 이메일이 발송에 실패합니다. 사실 해당 단체가 반드시 필요해서 받는 정보라기보다, 홈페이지 구축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이미 개발되어 있는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죠. 수집된 이후 방치된 이런 데이터들이 외부로 유출되고, 그로 인해 수집이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민감성 개인정보는 활용할 항목만 수집하는 편이 좋습니다. 어떤 단체에서 파악해야 할 회원정보는 반드시 개인정보만은 아닙니다. 회원의 관심사, 참여이력, 좋아하는 색깔 등. 집 주소보다 직장 주소가 더 중요할 수도 있고, 결혼기념일보다 좋아하는 예능프로그램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할 수도 있어요. 하나의 정보를 수집했다면, 그 정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정보제공자가 최대한 빨리 느낄 수 있도록 바로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상의 정보가 필요하면, 당당하게 다시 요청하세요. 명분에 동의하고 동참하기를 원하는 회원이라면, 용처가 명확한 정보는 기꺼이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리고,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에 명시된 정보보호수단에 대한 대비도 꼭 기억해 주세요.

 

2. 단계별 수집 : 지속적 회원 관리의 핵심

 

IT 인프라가 고도로 발달한 한국이라고 해도, 홈페이지나 어플리케이션 등의 도구를 통해서 개인정보를 수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공문서나 행사참가 절차 등 이미 익숙한 커뮤니케이션 경로가 따로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까닭으로 한 번 정보를 수집할 때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받으려고 시도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용도로 누가 사용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꺼리게 마련입니다. 최근 발생한 대량의 데이터 유출 사건으로 인해서 개인정보와 관련한 각종 법령과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죠. 그렇기 때문에, 회원의 거부감을 줄이고 각종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서 활동 범위나 참여 정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회원정보를 수집하는 편이 좋습니다. 뉴스레터 회원은 이름과 이메일만 받고, 전화번호를 받을 때 주소를 굳이 한 번에 받지 않아도 됩니다. 제공된 개인정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리고, 한번 받은 정보는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위해서라도 계속 활용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지난 1월 한국에 진출해 월 평균 600% 이상 성장하고 있는 다이어트 어플리케이션 ‘눔(NOOM)’의 회원정보 수집 방법을 벤치마킹 해 보시길 권합니다.

 

3. 통합 : 원소스 멀티유즈

 

많은 단체들이 홈페이지를 운영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행사를 운영하죠. 연말이 되면 송년회나 감사편지도 많이 보냅니다. 하지만 각각의 경우에서 사용된 정보들은 실무자들의 컴퓨터나 자료집 안에서 잠들어버리는 일이 많죠. 작게는 회의 참가자들의 연락처에서부터 크게는 단체 회원의 전체 명단까지, 모든 데이터베이스는 하나로 통합되어야 합니다. 각 실무담당자의 컴퓨터에 제각각 저장되어 있는 엑셀파일은 데이터베이스가 아닙니다. 손에 익은 정렬방식과 색색으로 표시된 셀은 실무 담당자 입장에서 잠깐 편하게 일하기 위한 것일 뿐, 버전 관리와 내용 수합을 위한 별도의 인력이 투입되게 마련이고, 결국에는 애매한 버전 그대로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데이터베이스는 단체의 자산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매뉴얼에 의한 통합관리가 필요합니다. 반드시 IT기반의 통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구글Docs나 MS의 SkyDrive 등 무료로 제공되는 협업도구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에 기반한 데이터베이스의 활용비율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데이터베이스는 IT담당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인력과 시간의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외부 전문가의 화려한 컨설팅보다는 현장 활동가의 경험과 판단력이 필요합니다. 지금 바로 IT담당자를 만나서 현장 모금가의 입장에서 답답함과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세요.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뜨거운 열정과 냉철한 두뇌를 가지고 조금씩 천천히 변화를 모색해 가면, 어느 순간 몰라보게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시게 될 겁니다.


※ 본 포스팅은 서울특별시 장애인시설복지협회의 의뢰를 받아 협회 블로그(http://sjh8171.tistory.com/)에 게재했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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